이스탄불(2)
제 2 일 (2005년 12월 31일)
긴 낮잠을 자고 5시 조금 넘어서 잠이 깬 것 같다. 6시가 되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무슬림의 기도시간인 아잔을 알리는 소리다.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그닥 좋은 것 같지가 않다.
일단 씻고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는데 상당히 분위기가 좋았다. 객실보다 식당이 더 맘에 든다.
올 여름 유럽여행때 들렀던 호텔에 비하면 천국이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방으로 올라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점점 배가 아파온다.
아~ 뭔가 이상해...라고 생각하고 나가려는데 우씨!! 문이 잠겨서 열리지가 않았다.
친구에게 종업원을 오라고 한 뒤 안에 있는데 식은땀이 나길 시작했다. 배는 계속 아프고 힘도 없다. 터키에서의 첫 아침을 이렇게 시작하다니!! 간신히 문이 열리고 허겁지겁 가방을 들고 로비로 나오니 흥수총각과 로컬가이드가 보였다. 어제 흥수총각이 로컬가이드가 약간 살찐 톰크루즈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ㅋㅋ~) 8시에 버스를 탔다. 날씨는 비가 그치긴 했지만 여전히 차갑고 흐릿하다.
버스를 타고 흐릿한 이스탄불의 거리를 구경하며 도착한 곳은 구시가지에 있는 히포드럼이다.
이곳은 로마시대의 전차경기장으로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진 곳이 예전의 트랙 자리랜다.
먼저 8각형의 카이저 빌헬름 분수(독일의 황제가 오스만제국에 왔다가 술탄의 환대에 감사해하며 돌아가서 짓기 시작하여 기차로 운반했단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난 후 차례대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3개의 기둥을 보았다.
첫번째는 테오도시우스1세의 오벨리스크로 고대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두번째가 청동 뱀기둥인데 뱀 세마리가 서로 꼬여 올라가는 형상이다.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빼앗은 방패를 녹여 만든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가져왔다. 뱀한마리는 영국에, 또다른 한 마리는 헝가리에 나머지는 소실되었단다.
세번째는 콘스탄티누스7세의 기둥으로 그의 조부를 위해 만든 것이다. 기둥에는 청동의 구멍들이 가득했는데 원래는 청동이 박혀있던 것을 이민족이 침입하여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해 버려서 이제는 구멍만 남아있다. 기둥들은 모두 지면보다 한참 아래에서부터 세워져 있는데 이는 지진과 지각의 융기로 인해서라고 한다.
히포드럼에서 보면 술탄 아흐메트 자미(블루모스크)가 보인다.
터키 대표의 이슬람 사원으로 1609~1916년에 완성했는데 아잔(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예전에는 병원과 학교 등 제반시설들이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사원만 남아 있다.
터키의 사원 중 유일하게 미나레가 6개인데 그 이유는 황금(알툰)으로 지으라는 명령을 건축가가가 6(알트)으로 잘못 알아들어 이렇게 지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 미나렛을 6개 짓는 것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서만 가능한 일인데 이 건물 때문에 이후 메카에서는 미나렛을 7개로 짓는다고 한다.
모스크 입구의 문에는 말 머리 높이 정도의 사슬이 늘어져 있는데 이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의미와 말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울 나라 절 입구의 하마석과 비교가 된다.
그 문을 통과하면 몸을 세정하는 곳인 아브데스크가 있다.
사원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이날 치마를 입고 있어서인지 사제가 내게 긴 수건을 주면서 다리를 가리라는 몸짓을 해 주었다. 문득 바타칸 성당을 들어갈 때가 생각이 났다.
내부에 들어서면 빛나는 미흐랍(메카방향을 향하게 되어 있고 사원을 지을때 가장 먼저 짓게됨)과 민베르 방향이 눈부시며 블루모스크라는 별칭에 걸맞게 파란색으로 장식된 타일(이즈미르에서 가져옴)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내부를 빛내주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거대한 규모를 기둥이 아닌 작은 돔들로 지탱한다는 사실도 놀랍다. 대형돔을 4개의 중간돔이, 중간돔은 다시 30개의 작은 돔으로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블루모스크 >
< 블루모스크의 야경--너무 이뻤다 ^^ >
들어왔던 곳과 반대로 나오니 멀리 붉은 색의 건물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다. 먼저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마당에서 보이는 그리스 양식의 원기둥들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테네와 에페소스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비잔틴시기에는 최대의 대성당(그리스정교의 총본산)으로 굴림했으나 술탄 아흐메트 2세에 의해 이스탄불이 정복당한 후 이슬람의 자미로 개조되었는데 당시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본 술탄은 3일간의 약탈시 이 건물만은 약탈이 되지 않도록 명령했단다.
내부를 들어가는 문위에는 레오6세(황제인지 교황인지 알 수 없다. 물어볼 걸...)가 결혼을 3번이나 한 자신의 방탕한 아들의 죄를 고하는 황금색 모자이크가 있다. 문안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내부가 보였는데 아쉽게도 현재 공사중이어서 완전한 형태를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 흥수총각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성당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슬람의 자미와는 조금 형태가 다르다. 작은 돔만 있고 기둥이 없으며, 기둥이 없기 때문에 벽을 두텁게 하여 돔을 지탱한다. 그리고 창이 많이 없어서 내부가 조금 어두운 편이었다.
또한 미흐랍과 민베르는 여느 자미들과는 달리 정방향이 아닌데 원래 있던 건물에서 메카방향으로 미흐랍을 만들다 보니 방향이 살짝 틀어진 것이라 한다.
터키는 거의 100년에 한번 꼴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곳 역시 1999년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기둥이 약간 기울었고 2층의 경우 바닥이 조금 틀어져 있었다.
사원내부에 있는 옥항아리는 성당시절에는 향로의 기름을 넣어 조명으로 이용되었지만 오스만시절에는 세정을 하는 곳을 이용했단다.
또 이곳에는 땀흘리는 기둥이 있는데 대리석의 찬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구멍에 손을 넣으면 찬 기운이 느껴진다. 옛날 왕이 기도를 하다가 잠이 오면 기둥에 이마를 대서 잠을 깨곤 했단다.
< 아야 소피아 >
< 아기예수와 성모에게 소피아성당과 콘스탄티노플을 바치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 아야 소피아 내부, 이곳만 보면 과거 성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 >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아니라 큰 돌로 연결한 가파른 길을 따라 갔다. 옛날 왕후들이 가마를 타고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들었단다. 2층 발코니는 왕,왕후 귀족등이 이용한 곳이라는데 현재는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발코니를 따라 끝까지 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트니 그 유명한 황금모자이크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 먼저 본 것이 지금도 복원중인 마리아-예수-세례요한의 모자이크이다. 이들 머리뒤로 후광이 보이는데 예수님에게만 십자가 모양이 보였다. 이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때 만들어졌다가 오스만 제국시절에 석회칠을 하여 가려버렸단다. 그러다가 현대에 발견되어 지금 한창 복원중이다.
두 번째로 본 것 두점의 모자이크화였는데 오른쪽에는 The Virgin holding Christ로 이레네 항후와 아기예수, 성모마리아가 있는 모자이크화이고 왼쪽에는 조외의 남편- 예수님- 으로 조외라는 여자는 결혼을 3번하였고 결혼때마다 남편의 얼굴을 새로 모자이크하게 하였단다. 이 모자이크화에서 기억나는 것은 예수님의 눈동자이다. 조외를 노려보는 듯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몰려있다. 비난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기둥에 있는 홈에 엄지를 끼워 한바퀴를 돌려 성공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마리아의 기둥으로 갔다.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꼭 이루어지겠지... ^^
출구로 나와서 다시 위쪽을 보니 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께 이스탄불과 아야소피아성당을 바치는 모자이크가 있었다. 행복한 예수님...
아야소피아를 나와 버스가 도착한 곳은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타는 선착장이다
선착장에서 마주보이는 예니 자미와 슐레이마니예 자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배에 올랐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암소가 헤엄치던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옛날 제우스가 자신의 애인을 헤라의 질투를 피하게 하기 위해 암소로 만들었는데 헤라가 눈치를 채고 그녀를 쫓게하자 암소가 울면서 헤엄쳐 도망갔다는 신화에서 유래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바다이기도 하다. 이 해협을 연결하는 2개의 대교가 있는데 1대교는 영국과, 2대교는 일본과 합작하여 만들었단다. 일본과의 합작은 어떤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되었단다.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너무 아름다웠고 도중 우리는 갈라타 타워, 돌마바흐체 궁전, 루멜리 히사르 그리고 알지 못한 이곳저곳들을 열심히 탄성을 지르며 구경했다. 보스프러스 해협의 3번째 선착장에 내리니 버스가 기다라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점심은 터키식으로 준비가 되었는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ㅠㅠ
< 이슬람 사원들이 멋지게 실루엣을 그리고 있는 구시가지 전경 >
점심식사 후 일행과 함께 톱카프사라이(궁전)으로 향했다.
오스만 제국의 궁으로 이곳에 대포가 설치되었던 것에서 연유하여 토프(대포)카프(문)사라이(궁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제1문을 통과하면 디즈니랜드를 연상케 하는 제2문(제국의 문)이 나오는데 이 동화같은 문 옆에는 사람을 처형한 후 우리의 망나니에 해당되는 사람이 손을 씻는 수도가 있다.
제국의 문을 통과하면 옛주방과 중정, 하렘의 3부분으로 구분하여 관람이 시작된다.
당시 1200명의 요리사가 있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옛 주방 건물은 현재 도자기와 유리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중정은 대관식이 거행되던 제3문(행복의 문)을 통과하면 바로 도서관과 알현실이 나온다.
알현실 출입문 옆에 설치된 수도는 왕과 나눈 비밀얘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을 틀어 두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 의상 전시실과 유명한 보석관도 볼 수 있다.
보석관 관람을 마친 이들을 기다렸다가 쾨쉬퀴로 이동, 보스포러스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종교관, 역대 왕들의 초상화들이 전시된 실(이름 모름... -.-;;) 그리고 무기관까지 관람을 마치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사당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에는 벽장의 형태로 비밀의 방이 있어 누구도 왕을 비방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아쉽지만 하렘은 보지 못하고 나왔다.
< 황제의 알현실과 문제(?)의 그 수도꼭지>
3시 30분경 버스는 고도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꼭!!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는 거의 6~7시간 걸리는 먼 거리였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상태가 우리의 출발시간은 한국시간으로 밤 11시경...나는 열심히 잤다. 하지만 중간중간 배가 아파서 계속 깨야했다. 불길하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9시경 앙카라의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는데 도통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가 점점 아파져서 오이랑 야채외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일행 중 의사선생님이 있었다. 그분은 장염은 굶는게 최고라고 아무것도 먹지 말라셨다.
으흑~ 먹을 것을 두고 먹지 못하다니...홍길숙이 된 기분이다.
오늘은 12월 31일, 이미 우리나라에선 1월 1일이겠지만 우리 일행은 바에 가서 2005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물론 난 아무것도 마시질 못했다 ㅠㅠ